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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정기 기고] 혐오가 자유와 권리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일간스포츠 정기 기고] 혐오가 자유와 권리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일간스포츠 정기 기고] 혐오가 자유와 권리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혐오가 자유와 권리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노종언 대표변호사 | 일간스포츠 「노종언 컬처인컬처」 칼럼 | 2026. 10. 9.

칼럼 전문: 일간스포츠에서 원문 확인하기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존재입니다.

본 게시물은 일간스포츠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원문의 주요 내용을 축약한 글입니다. 칼럼 전문은 첨부된 원문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 논란이 배우의 자택 앞 시위로

노종언 대표변호사는 칼럼에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과 출연 배우를 향한 시위를 통해 정치적 갈등이 개인의 일상까지 침범하는 현상을 살펴봅니다.

〈암살자(들)〉은 고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개봉 후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과 영화적 상상력의 범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섰습니다.

논란은 작품과 제작진에 대한 비판을 넘어 주연배우 유해진 씨의 자택 앞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소속사는 온라인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 사생활 침해 및 신변 위협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영화의 역사적 해석을 비판하는 것과 출연 배우의 거주지 앞에서 신변을 위협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구분해서 살펴야 합니다.

과거의 죽음과 상처가 공격의 재료가 될 때

칼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소재로 한 밈과 가상 영화 포스터, 5·18 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조롱과 의혹 제기를 함께 언급합니다.

정치적 풍자와 비판은 민주사회에서 폭넓게 보장돼야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이나 역사적 희생을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로 반복해서 사용하면 피해자와 유족, 공동체가 겪은 고통은 토론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노종언 대표변호사는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의 상처를 가볍게 취급하는 태도가 어느 한쪽 진영에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각자 다른 정의를 내세우더라도 상대방을 사람으로 대하는 기준까지 포기하면 표현의 자유는 대화의 토대가 아니라 공격의 수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탱크데이’ 구호와 고교야구 징계

노종언 대표변호사는 스타벅스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탱크데이’ 홍보 논란이 고교야구 경기의 지역 비하 구호로 이어진 사례도 다룹니다.

2026년 6월 29일 배재고와 광주제일고의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기에서 일부 배재고 학생들이 “스타벅스 가야지”와 “탱크데이”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해당 구호는 5·18 민주화운동과 광주를 조롱한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배재고는 공식 사과했고 야구부원들은 광주제일고를 방문해 사과한 뒤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습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처음 6개월의 전국대회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고, 이후 재심을 거쳐 기간을 1개월로 줄였습니다.

학교는 구호를 주도하거나 따라 한 학생들에게 별도 징계를 내렸습니다.

잘못을 꾸짖는 일과 미래를 지우는 일

노종언 대표변호사는 학생들의 발언이 잘못됐다는 판단과 그 학생의 미래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역사적 희생을 조롱한 표현에는 분명한 비판과 교육적 조치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 책임이 어디까지 이어져야 하는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공개적인 비난이 징계와 사과 이후에도 계속되고 한 사람의 진학·진로와 사회생활을 영구적으로 막는 수준에 이르면, 책임을 묻는 일이 또 다른 형태의 집단적 공격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칼럼은 잘못을 묵인하자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비판과 징계가 잘못의 정도에 비례하는지, 당사자에게 사과와 변화의 기회를 남기는지를 묻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남의 상처를 찌르는 자유가 될 때

표현의 자유는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고 권력을 비판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상처를 의도적으로 찾아 조롱하고, 사람을 적과 아군으로만 구분하기 시작하면 자유의 목적은 달라집니다. 의견을 교환하는 자유가 상대를 사회에서 밀어내는 권리처럼 사용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먼저 모욕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욕도 정당하다는 논리가 반복되면 지켜야 할 선이 사라집니다. 책임을 묻는 과정마저 다음 공격의 명분으로 쓰입니다.

노종언 대표변호사는 혐오가 자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건드릴 수 없는 권리처럼 취급되는 상황을 경계합니다. 인간을 위해 보호해 온 자유에서 정작 인간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와 법적 책임

모든 불쾌하거나 무례한 표현이 법적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표현의 내용과 대상, 사실 적시 여부, 공연성과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명예훼손이나 모욕, 협박, 스토킹 등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합니다. 창작물에 대한 비판과 역사적 해석에 관한 논쟁도 원칙적으로 폭넓게 허용됩니다.

다만 특정인의 거주지를 찾아가 신변을 위협하거나 반복적으로 접근하고, 허위사실을 퍼뜨리거나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한다면 창작물에 대한 비판과는 다른 법률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암살자(들)〉 출연 배우 측이 예고한 법적 대응도 실제 게시물과 시위 방식, 위협의 구체성 등을 기준으로 판단될 사안입니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개별 참여자의 위법성을 단정할 수 없습니다.

분열이 남긴 역사적 결과

노종언 대표변호사는 정치적 적대가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린 역사적 사례로 로마 공화정 말기의 내전과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민족주의를 언급합니다.

로마는 기원전 1세기에 숙청과 내전을 거치며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전환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성립은 여러 원인이 결합한 결과지만, 반복된 내전과 정치적 혼란이 전환 과정에 영향을 줬습니다.

옛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자극한 민족주의와 공포가 이웃 사이의 불신과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는 보스니아계 세르비아군이 8,000명이 넘는 보스니아 무슬림 남성과 소년을 살해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와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를 집단학살로 인정했습니다.

칼럼은 역사적 사례의 원인을 한 가지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적으로 규정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정치가 공동체에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 살펴봅니다.

갈등을 이용하는 정치

적과 아군을 명확하게 나누는 방식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키우면 선거에서는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정치인의 지지율로만 남지 않습니다.

가족과 친구 사이의 대화가 끊기고 직장과 학교에서 서로를 피하게 되는 등 일상의 관계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노종언 대표변호사는 정치적 갈등을 만든 사람보다 평범한 시민이 그 대가를 오래 부담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내 편의 조롱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가

혐오를 멈추는 일은 상대방이 먼저 변하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시작되기 어렵습니다.

내 편의 조롱과 허위 주장에도 고개를 젓고,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한 사람 전체를 적으로 규정하는 행동에 참여하지 않는 선택이 먼저 필요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의 혐오에는 침묵하면서 상대 진영의 혐오만 비판하면 공통의 기준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전해야 할 것도 미워해도 되는 사람의 명단이 아닙니다. 의견이 달라도 같은 학교와 직장,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노종언 대표변호사는 우리 편의 승리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음 날에도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지켜야 한다고 칼럼을 마무리합니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여부와 출연 배우 자택 앞 시위 참가자들의 법적 책임은 확정판결로 확인된 사안이 아닙니다. 본 게시물은 칼럼의 사회적 논지를 축약한 것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위법성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노종언 컬처인컬처」는 일간스포츠에 정기 연재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존재의 노종언 대표변호사가 문화와 사회 현상에 담긴 법률·윤리적 쟁점을 설명합니다.